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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1987 (언론부역, 부채감, 직선제)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건 한국 언론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외국인 기자 한 명이었죠.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제대로 직시했을 때, 분노보다 수치심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80년대 후반 지하 동아리방에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흐릿한 VHS 화면을 들여다보며 느꼈던 그 싸늘한 공포가, 지금도 가끔 불현듯 되살아납니다.언론이 침묵할 때, 카메라 한 대가 역사를 바꿨다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내 언론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었습니다. 땡전 뉴스—당시 전두환 정권의 의중을 그대로 받아쓰던 KBS 저녁 9시 뉴스를 가리키는 말로, 뉴스 첫머리가 반드시 전두환으로 시작한다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를 통해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일부 양심 있는 기자들이 진실을 ..

카테고리 없음 2026. 8. 20. 20:03
영화 명량 (지략 대결, 학익진과 거북선, 질문, 총평)

무더운 여름 극장을 찾을 이유를 못 찾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 영화 하나로 그 고민이 완전히 해결됐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두 번째 작품 , 전작 을 본 이후 8년을 기다렸는데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해전 블록버스터가 이 정도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지략 대결 — 이순신과 와키자카, 수 싸움의 치열함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해전 액션만 화려하게 퍼붓는 영화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앉아 보니 전반부가 오히려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임진왜란(壬辰倭亂) 발발 초기, 왜군은 단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하고 선조 임금은 의주까지 몽진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몽진(蒙塵)이란 전란을 피해 왕이 수도를 떠나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6. 15:38
왕의 남자 (줄타기, 반전, 반허공, 광대)

2005년 겨울, 저는 별 기대 없이 극장 의자에 앉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났는데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왕의 남자》는 조선 시대 광대들의 이야기를 빌려, 권력과 자유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티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웃음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나는 이 구조가,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줄타기 한 장면이 전부를 말했습니다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줄타기 장면에서 저는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장생이 높은 줄 위에 올라 "아랫도리가 다 시원하구나"라고 너스레를 떨고, 구경꾼들을 향해 양반과 권력자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그 사설(辭說)이 단숨에 극장 전체의 공기를 바꿔버렸습니다. 여기서 사설이란 판소리나 탈춤 등 전통 공연에서 광대가 즉흥적으로 이어가는 말 놀음을 뜻합니..

카테고리 없음 2026. 8. 14. 18:27
도둑들 (케이퍼무비, 캐릭터, 비하인드)

전국 1,298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영화가 있습니다. 2012년 여름, 《도둑들》이 개봉했을 때 저도 상영관 안에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범죄 오락으로 보러 갔다가 캐릭터 하나하나의 서사에 완전히 발이 묶인 경험이었습니다.케이퍼 무비의 완결판, 《도둑들》이 다른 이유케이퍼 무비(Caper Movie)란 한 팀이 정교한 계획을 세워 절도나 사기를 벌이는 과정을 중심 서사로 삼는 범죄 장르입니다. 쉽게 말해 주인공이 경찰이 아니라 도둑인 영화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어 이 케이퍼 무비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도둑들》을 완성했습니다.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감독은 대사와 장면 사이에 숨 쉴 틈을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2. 11:08
베테랑 (권선징악, 소시오패스, 카타르시스)

2015년 개봉 당시 1,341만 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4위에 오른 . 처음엔 저도 "400만 정도면 잘 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상영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동시에 내뱉던 그 안도의 탄성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형사 액션물이 아니었습니다. 권선징악 서사, 단순한데 왜 이렇게 통했나일반적으로 흥행하는 사회파 영화는 구조적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은 그 공식을 비틀면서도 성공했습니다. 대기업의 불법 세습, 하도급 노동자의 임금 체불, 공권력과 자본의 유착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꺼내 놓고, 결국 "나쁜 놈 한 명을 때려잡는" 권선징악(勸善懲惡) — 쉽게 말해 선이 악을 응징하는 단순 대결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1. 13:00
영화 암살 (역사 혀현장, 케이퍼무비, 질문, 결론)

솔직히 저는 영화 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잘 만든 액션 블록버스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1,270만 명이 본 흥행작이니 재미있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는 염석진의 대사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서야 뭔가 잘못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직접 발로 뛰며 역사 현장을 찾아다녔고, 영화가 미처 담지 못한 것들을 제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역사 현장을 직접 밟고 나서야 보인 것들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찾아간 곳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었습니다. 붉은 벽돌 담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던 그 서늘한 공기는, 1930년대 무단 통치와 민족말살통치가 교차하던 시대의 냉기 같았습니다.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독방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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