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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1,156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좀비 장르가 천만 고지를 넘었습니다. 저도 그때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들어갔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된다고? 첫 장면부터 달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극장에 가기 전까지 저는 이 영화에 대해 절반 정도는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동아시아권에서 만든 좀비물은 제가 몇 편 찾아봤는데, 대부분 특수 분장이 가면처럼 붕 떠 보이거나 움직임이 어색해서 몰입이 깨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판 좀비가 과연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표를 품은 채 상영관에 앉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심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택한 방식은 분장을 최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핏줄 표현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전적으로 움직임에 집중했습니다. 이른바 좀비 안무(zombie choreography)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접근법은, 브레이킹 댄스 계열의 전문 안무가와 협업해 관절이 역방향으로 꺾이고 예측 불가능한 박자로 튀어나오는 동작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서 좀비 안무란 좀비 캐릭터의 움직임을 사전에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훈련시키는 연출 기법으로, 단순히 "느리게 걷는" 클래식 좀비 공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핵심 요소입니다.
실제로 보조 출연자 100여 명이 동작 숙련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고 합니다. 몸이 뱀처럼 휘어지는 분들은 열차 통로를 타고 쏟아지는 장면에 배치되었고, 그 장면을 처음 모니터로 확인한 저는 솔직히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건 분장 문제가 아니었구나. 움직임이 진짜 무서운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이유, 이 영화의 진짜 주제
부산행을 보면서 저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 장면은 좀비 떼가 쏟아지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열차 안에서 문을 묶어 생존자들을 격리시키던 장면, 그리고 군부대마저 뚫린 대전역에서 '국민 여러분은 안전합니다'라는 정부 방송이 흘러나오던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그 정부 방송 장면에서 주변 관객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웃음이 나왔다는 것, 그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묵시록적 서사(apocalyptic narrative), 즉 사회 붕괴를 배경으로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서사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묵시록적 서사란 문명이나 사회 질서가 극단적으로 붕괴되는 상황을 통해 평소엔 드러나지 않던 인간의 민낯을 포착하는 이야기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 민낯은 두 축으로 나뉩니다. 처음에는 딸과 자신만 챙기던 석우(공유 분)가 타인의 도움을 받은 뒤 스스로 먼저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쪽, 그리고 끝까지 남을 방패 삼아 살아남으려는 용석(김의성 분)의 쪽.
용석 캐릭터가 유독 분노를 유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김의성 배우가 관객을 헷갈리게 만드는 미묘한 호흡을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틀린 말만 하는 게 아니라 '나라도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이나마 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간극이 오히려 더 불쾌하고,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사건의 배경에는 유선 바이오 기업의 주가 조작이 있고, 그 탐욕이 바이러스 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우리가 뉴스에서 숱하게 봐온 기업 비리나 메르스 사태 같은 현실의 재난을 겹쳐 읽게 만듭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 정부의 거짓 안심 방송 → 현실 재난 보도 패턴과의 겹침
- 기업 탐욕(유선 바이오 주가 조작) → 재난의 인재(人災) 구조
- 군인들이 가장 먼저 감염 →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최전선의 역설
- 열차 안 소집단 → 한국 사회의 축소판
세트인지 몰랐습니다 — 후면 영사 기법이 만든 KTX의 질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실제 KTX 안에서 찍었다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의 열차 장면은 실제 KTX 설계도를 미술팀이 직접 탑승해 측량하고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된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돌아봤을 때도 어색한 부분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비결 중 하나는 후면 영사(rear projection) 기법이었습니다. 후면 영사란 배우 뒤편에 거대한 LED 스크린을 설치하고, 그 위에 실제 바깥 풍경 영상을 재생해 마치 열차가 실제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촬영 기법입니다. 단순히 스크린만 띄우는 게 아니라 LED 판 뒤에 조명을 추가로 배치해 특정 각도에서 빛이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반사되도록 했고, 그 덕분에 합성 티가 나지 않는 질감이 완성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냥 '배경 영상 틀어놓기'가 아니라 '조명까지 계산한 환경 재현'이었던 셈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다시 돌려보면서 창밖 장면들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빛의 방향이 내부 조명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CG 후반 합성으로 처리했다면 비용이 상당히 올라갔을 텐데, 현장에서 해결했다는 점에서 제작팀의 실용적인 판단이 돋보였습니다. 또한 배우의 신체 비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실제 KTX 내부보다 천장 높이를 조금 높여 세트를 제작했다는 후일담도 이 영화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줍니다.
훌륭하지만 아쉬운 — 신파와 평면적 캐릭터라는 한계
좋은 영화를 더 좋아하기 위해서는 아쉬운 부분도 솔직하게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행이 선사한 재미와 메시지는 분명히 값졌지만, 제가 극장을 나오면서 동시에 느낀 불만족도 있었습니다.
가장 선명하게 남은 아쉬움은 후반부의 과도한 신파 클리셰(cliché)였습니다. 클리셰란 창의성 없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진부해진 표현이나 연출 공식을 의미합니다. 석우가 감염된 뒤 딸 수안과 이별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슬픈 음악과 회상신을 겹쳐 감정을 최대한 쥐어짜 내는 방식을 택합니다. 전반부까지 유지하던 숨 막히는 좀비 장르의 템포가 이 지점에서 뚝 끊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장르적 쾌감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결국 관습적인 감동 공식으로 귀결됐다는 점은 장르 팬으로서 짙은 아쉬움이었습니다.
캐릭터 구도 역시 다소 평면적입니다. 아포칼립스 장르(apocalypse genre), 즉 세계 종말이나 사회 붕괴를 다루는 장르에서 인물의 입체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용석은 거의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능적 악인에 가깝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김의성 배우의 연기가 이를 어느 정도 구원하지만, 시나리오 레벨에서 그에게 주어진 서사적 공간은 좁습니다. 사건의 원인이 된 바이러스 발생 경위도 전화 통화 몇 줄로 처리되어, 세계관의 설득력을 충분히 쌓지 못한 채 달려가는 인상을 줍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부산행은 2016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그 흥행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한국형 좀비 장르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는 의미도 충분합니다. 다만 장르적 완성도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신파와 평면적 인물 구도라는 한국 상업영화의 관습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작품이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산행 좀비가 어둠 속에서 멈추는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설정상 부산행의 좀비는 시각에 의존해 먹이를 추적합니다.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는 인식 능력을 잃고 공격성이 사라집니다. 이 설정은 한정된 열차 공간에서 긴장과 숨 막히는 탈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인데, 다소 편의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서 '설정의 일관성이 조금 더 정교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Q. 부산행 열차 장면은 실제 KTX에서 촬영한 건가요?
A. 대부분은 실제 KTX가 아닌 세트에서 촬영했습니다. 미술팀이 실제 KTX에 탑승해 직접 측량한 뒤 재현한 세트 두 칸을 제작했고, 창밖 풍경은 후면 영사(rear projection) 기법으로 처리했습니다. 일부 장면만 실제 열차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장면을 찍은 날 더위가 극심해 배우들이 매우 힘들었다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Q. 부산행 바이러스의 원인이 뭔가요?
A. 영화 안에서 주인공 석우가 운용에 관여했던 유선 바이오 기업의 주가 조작,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무리한 기업 활동이 바이러스 발생의 배경으로 암시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전화 통화 몇 줄로 간략하게 처리되어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바이러스의 정확한 기원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남겨진 측면이 있습니다.
Q. 부산행 감염자 역할 배우들은 어떻게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나요?
A. 좀비 안무를 담당한 전문 안무가에게 사전 레슨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인 액션 신처럼 '합'을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박자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보조 출연자들은 동작 숙련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장면마다 배치되었고, 유연성이 뛰어난 분들은 이후 다른 좀비 영화에도 꾸준히 캐스팅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론
부산행은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한 영화입니다. 분장 대신 움직임으로 승부를 건 좀비 안무, 후면 영사 기법으로 완성한 KTX의 질감, 그리고 재난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까지 — 이 영화가 없었다면 이후 나온 한국형 좀비 콘텐츠들도 지금처럼 자신감 있게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파 클리셰와 평면적 캐릭터라는 아쉬움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제가 극장을 나오면서 평소 아무렇지 않게 타던 KTX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정직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이미 보셨다면 지금 다시 한 번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